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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꼭 가야되는 역사 유적지 '공산성'

캠핑장&맛집&카페 리뷰/충청도 캠핑&맛집&카페

by 만물보따리장수 2020. 4. 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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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난뒤 배도 부르고 해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 공산성을 찾았어요. 원래는 입장료가 있었으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입장료는 무료였어요.

 

 

 

입장시간은 09:00 ~ 18:00

입장료는

성인 1200원

청소년 / 군인 800원

어린이 500원

 

 

 

 

공산성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를 알아야 겠죠??

 

 

 

 

 

 

 

 

공산성은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한다.

백제때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고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산성을 쌓은 연대는 문주와 이후 성왕 이전까지 수도 웅진을 수비하기 위하여 여러 성을 쌓았던 동성왕 때로 짐작되고 있다. 하지만 웅진 천도 이전에 이미 성책 시설이 있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2.2km 정도인데, 돌로 쌓은 부분이 약 1.81km이고, 흙으로 쌓은 성벽은 약 390m이다.

성벽은 2중으로 축조되었지만, 만후루터 주변에는 동성왕이 쌓았다고 전하는 무너진 성벽이 있어서 모두 3중으로 축조된 셈이다. 이것은 규모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성 북쪽의 영은사 밖에도 높이 7.4m, 길이 43m의 성벽이 2중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돌 홈통인 석루조 2개가 있고, 그 위에는 너비 2m의 수구문과 문의 주춧돌 2개가 남아 있다.

 

흙으로 쌓은 성벽은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후대에 고쳐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 높이와 너비는 일정하지 않은데, 대체로 높이는 1m이고, 너비는 아랫부분이 8.5m, 윗 부분이 3m이다. 성안에는 깊이 약 2m의 호 가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돌로 쌓은 성벽은 가운데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을 돌로 쌓는 협축방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다만 일부는 속을 다지고 겉을 쌓은 성벽의 윗부분 너비는 약 0.7m 정도이며, 안쪽에는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백회를 발랐다. 진남루 주변에 사용된 돌은주로 긴 네모꼴이나 네면이 같은 네모꼴인데 반해, 영은사 밖에 사용된 돌은 비교적 큰 편이다. 나머지 구간은 대체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산성의 주문은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이다. 진남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초익공 팔작 지붕 누각이며, 공북루는 1603년(선조36)에 옛 망북루터에 세운 것으로 고주를 사용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다락집이다. 서문은 1975년에 보수공사 하였을 때 높이 4.4m, 너비 5.6m, 길이 17m의 크기를 확인하였지만 받침 부분만 복원이되었고, 동문도 발굴 결과 길이 6.45m, 너비2.46m였음이 확인 되었다. 1859년(철종10)에 편찬된 [공산지]에 의하면, 동문은 서문. 남문. 북문처럼 2층이었으며, 동쪽 외곽의 토성에도 약 4m 크기의 문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80년에 발굴조사한 결과, 만하루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건물이며, 임류각은 백제 때 세운 건물이지만 파괴된 뒤 그 터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장대는 정면과 측면이 각각 2칸인 건물이었지만 현재는 적심석만 남은 상태로, 주변에서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그 뒤 1983년에도 조사되었는데, 길이 10.23m 높이 1.67m, 너비 13 ~ 0.8m의 암문이 발견되었다. 현재 성 안에는 후대에 세워진 영은사를 비롯하여 광복루. 쌍수정. 명국삼장비. 쌍수산정주필사적비. 주춧돌. 창고터. 연못터 등이 남아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곧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거처하였고, 이곳을 거점으로 나당 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부흥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뒤 822년(헌덕왕 14)에 김헌창이 일으켰던 반란을 이곳에서 진압되었고, 1623년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잠시 피난하기도 하였다.

출처 –네이버-

 

 

 

 

공산성을 보다보면 깃발이 보이는데 깃발의 뜻도 알면 좋을 듯하다.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신의 개념이나 형상이 표현된 것은 삼국시대에 중국 문화의 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송산리6호분 벽화의 사신도는 당시 왕성했던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국제교류를 보여준다.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이것은 백제의 나라색이며, 백제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여 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한 것이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6호분에 그려진 사신도의 위치를 그대로 따랐다. 따라서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북쪽에는 현무를 각각 배치하였다.

 

 

 

 

여긴 금강철교에요. 공산성 성터를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곳이에요.

sns에 보면 공산성 금강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으시더라구요.

사진에 찍기에 앞서 공산성의 역사를 먼저 알아 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공산성의 금서루는 공산성 4개 성문 가운데 서쪽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의 문헌 기록과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의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자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은 것이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작정 산책을 하기 보다는 공산성에 역사를 먼저 알고 산책을 한다면 더욱 보람된 공산성 역사를 알고 걸을 수 있다고 봅니다. 공산성에 온다면 꼭 한번 들려서 선조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알고 가는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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